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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들의수다

대통령의 메시지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며칠 전 대통령이 SNS에 굳이 안 올려도 좋을 글을 올렸다. "코로나 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형식이나, 파업 중인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놓는 내용이다. 


행여 알아듣지 못했을세라(?) 그 아래에 발언의 의도를 더 분명히 해 두었다. "지난 폭염시기, 옥외 선별진료서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방역에 의료진 모두가 애를 썼는데, 굳이 대통령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갈라치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나마 사실도 아니다. 지난 6월 1일 누적 기준 코로나 19 방역에 임한 의료진은 의사가 1천790명, 간호사·간호조무사 1천563명, 임상병리사 등 기타인력 466명 등으로 의사가 가장 많았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문제의 글을 쓴 이가 대통령이 아니라 오종식 청와대 기획비서관이었다는 얘기를 흘린다. 대통령은 그저 간호사를 격려하라 했을 뿐인데, 기획비서관이 그 뜻을 잘못 받들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계정의 트위터 글은 대통령이 직접 쓴다고 밝혀왔다. 이 또한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마저 문제가 되자, 청와대에서는 재차 글의 작성은 기획비서관이 했으나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올린 것이라 재차 해명했다. 대통령 계정의 트위터 글을 누가 쓰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 글이 대통령 이름으로 나갔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쓴 글이며, 책임 또한 대통령이 져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메시지의 성격이다. 


오종식 기획비서관은 문 대통령을 만든 광흥창팀의 멤버다. 정권이 출범하면서 NL 운동권 출신인 이 팀의 멤버들이 대거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국정운영에 운동권 멘탈리티가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 그 결과 대통령의 메시지가 이간질로 적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얄팍한 운동권 전술로 악용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왜 그 메시지가 대통령의 손에서 걸러지지 않았을까? 청와대의 해명과 달리 대통령이 아예 안 봤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치고 운동권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대통령이 읽고 게재를 허락한 것이라면, 대통령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어느 경우든 문제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윤건영 의원은 청와대 상황실장 시절 대통령에게 조국 임명강행을 권했다고 한다. 공공선에 입각해 처리해야 할 윤리적 상황을 청와대 참모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파할 군사적 상황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 정권의 폭주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윤건영 상황실장 역시 광흥창 팀 멤버였다. 


이 사소한 해프닝에서 통치의 패턴을 엿볼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정책의 문제를 이념화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수립해 관철시키는 것을 이들은 '이해의 조정'이 아니라 '선악의 결전'으로 바라본다. 자기들은 선이요, 상대는 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개혁의 '주체'로 놓고, 상대는 그저 개혁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대상으로 전락한 이들의 목소리가 개혁안에 담길 리가 없다. 그러니 격렬한 저항은 예정된 셈. 저들은 이를 '자신들의 실수'가 아니라 '기득권의 저항'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반란의 효과적 진압을 위해 의료진을 반으로 갈라쳐 그중 한쪽을 고립시키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정책의 수립만이 아니라 관철 역시 군사주의적이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이 이 운동권의 논리에 투항을 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은 한 정당이 아니라 온 국민의 대표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을 통합하는 대통령의 역할이 사라졌다. 이번 SNS 메시지 소동이 보여준 것은 이 나라에 대통령이 부재한다는 민망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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